■ 정성수 文學 散策■ 「제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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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8.2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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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고려장
 
하느님에게 똥침을 놓으려면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아파트 이십층 꼭대기에 나를 올려놓았다
 
일주일에 한 번 파출부가 와서는 살가죽을 홀랑 벗겨
세탁기에 돌돌 돌리며
팥죽냄새가 난다고 오만상을 찡그리고
잊어버릴만하면
며느리 년이 쥐 잡아 먹은 화상을 코앞에 흔들어대다가
냉장고 아가리가 터질 때까지
온갖 잡동사니를 꽉꽉 채우고 간다
 
어쩌다가 전화통이 체면치레를 해야 한다고 두꺼운 얼굴을 들이대며
예금통장은 잘 있느냐고 안부를 물을 때
나는 경기驚起를 한다
무시 캐다 들킨 놈처럼 머쓱해져
베란다 커튼 사이로 세상을 빼꼼히 내다보면
세상이 안부를 묻는다 아직 성성하냐고
 
땀내 감질나게 묻어오는 이곳은 현관문 밑구멍으로 아침마다 유모가
젖 한 통씩 물려주고 가고
그 젖통을 빨다가 똥침놀이도 시들해 지면
“야 이 놈들아 느덜도 금방 이여!”
소리쳐도 아랫동네에 사는 놈들은 귀머거리들 뿐이다.
 
 
□ 정성수의 한 문장 □
 
우리 민족은 동방예의민족이라고 할 만큼 효孝를 강조하고 노인을 우대하는 민족이다. 노인들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이런 풍토를 자랑하는 고려시대에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고려장이란 ‘자녀들이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지 않고 산속에 버려 굶어 죽게 만든다’ 는 것이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역사 자료 그 어디에도 없다. 단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부 문서에 고려장이란 말이 나온다. 하지만 그 의미는 고려시대까지 전염병 환자인 병자를 산속 깊이 내다 버리는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일 뿐 부모를 버렸다는 말은 전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도굴하고자 만들어낸 용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효를 ‘인류지대사’로 생각하고 있는 조선인 인부들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꺼려했다. 그래서 일제는 조선인의 조상 무덤을 파헤치기가 힘들었다. 그런 연유로 조선인의 경로효친 정신을 이용해 고려장이란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제국주의가 꾸며낸 이야기로 날조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노인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요양병원이나 노인시설로 내몰린다. 현대판 고려장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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